발표-실학과 서학

다산 정약용과 서학 1

써니2022 2023. 3. 25. 22:19

<다산 정약용과 서학 1> 용서(容恕) 아닌 추서(推恕)’

정약용이 1814년 가을에 완성했다는 대학공의(大學公義)3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정약용이 생각하기를, ‘[용서할 ]’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추서[推恕. ‘를 미는 것; 그같은 마음(如心)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하나는 용서[*容恕. ‘로 받아들이는 것; 그같은 마음(如心)으로 용납하는 것]이다. 옛 경전에는 추서가 있을 뿐이고 용서는 원래 없는데, 주자가 말한 바는 다 용서이다.

추서용서가 비록 가까워 보이지만, 그 거리는 아주 멀다. ‘추서라는 것은 스스로 닦음을 기본으로 하니, 자신의 착함을 행하는 까닭이다. ‘용서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니, 다른 사람의 악함에 너그러운 까닭이다. 이를 어찌 같은 것이라 하겠는가(鏞案 恕有二種 一是推恕 一是容恕. 其在古經 止有推恕 本無容恕. 朱子所言者 皆容恕也. 推恕容恕 雖若相近 其差千里. 推恕者 主於自修 所以行己之善也. 容恕者 主於治人 所以寬人之惡也. 斯豈一樣之物乎)”

 

이를 읽으면서 문득, 크리스찬들이 늘 암송하는 주의 기도의 한 귀절이 생각났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할 때, 크리스찬들의 그 용서, 다산의 말을 빌린다면, ‘용서를 말하는 것일까요? ‘추서를 말하는 것일까요?’

 

주의 기도에서의 용서란, 전후 맥락으로 볼 때, ‘하느님 바라기또는 하느님 본받기에서 비롯되는 용서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서로 사랑을 본받는 사람들의 용서를 말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서로사랑을 본받아 미는 실천을 근본으로 하는 용서이니, 이는 바로 다산 정약용이 말하는 추서와 기본적으로 같다고 판단됩니다.

다시 말하면, 다산이 말하는 추서, 결국 하늘에서 비롯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서로 사랑을 실천한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다산은 어질 ()’자를, 파자하면 人人(사람과 사람)이니, 나와 너가 서로 기대서 살아가는 마땅한 도리라고 해석했습니다. 또한 ()’이른바 ()을 행하는 길(所謂仁之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는 뒤섞여 어지러운 만물을 하나로 꿰뚫는다(一以貫之)’고 했습니다.(心經密驗朱子尊德性齋銘(乙亥=1815), 論語古今註附見 論語對策 乾隆辛亥 內閣月課(辛亥=1791, 정조15) )

(*권일신은 심문관에게 六經西學일맥상통한다(暗合)’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유교의 은 서학의 서로 사랑, 유교의 는 서학의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방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다산은 해석한 것이지요.)

*만약 ()를 본래의 뜻대로, +아닌 +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生物之心생명을 잉태하는 자의 마음에서부터 오는 행동(방도)’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모성의 하느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