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실학과 서학 4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 -'진실 너머 진실'에 도달하기

*드러나 있는 객관적 ‘사실’ -현존하는 공간* 열흘 만에 버리는 것은 누에의 고치이고, 여섯 달 만에 버리는 것은 제비의 둥지이며, 일 년 만에 버리는 것은 까치의 집이다. 그런데 한창 그들이 둥지를 짜고 엮을 적에,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 내고, 제비는 침을 토해 진흙을 개며, 까치는 바지런히 풀과 볏짚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꽁지가 빠져도 피곤한 줄 모른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지혜'를 천박하다 여기며 그들의 '삶'을 애달프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다. *드러나 있는 사실에 숨어 내재하는 ‘진실’ -존속(존재)하는 시간* 그러나 사람이 온갖 공력을 들여 지은 붉은 정자와 푸른 누각도 잠깐 사이에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 우리네 사람의 집 짓는 행위도, 따지고 보면 저 미물들이 하..

다산 정약용과 서학 1

–‘용서(容恕) 아닌 추서(推恕)’ 정약용이 1814년 가을에 완성했다는 『대학공의(大學公義)』 권3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정약용이 생각하기를, ‘서[용서할 恕]’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추서[推恕. ‘恕’를 미는 것; 그같은 마음(如心)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하나는 용서[*容恕. ‘恕’로 받아들이는 것; 그같은 마음(如心)으로 용납하는 것]이다. 옛 경전에는 추서가 있을 뿐이고 용서는 원래 없는데, 주자가 말한 바는 다 ‘용서’이다. …‘추서’와 ‘용서’가 비록 가까워 보이지만, 그 거리는 아주 멀다. ‘추서’라는 것은 스스로 닦음을 기본으로 하니, 자신의 착함을 행하는 까닭이다. ‘용서’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니, 다른 사람의 악함에 너그러운 까닭이다. ..

다산 정약용과 서학 2

–‘성인(聖人)이 되는 세 가지의 길’ 1815년 5월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심경밀험(心經密驗)』의 에는 다음과 같은 다산 정약용의 글이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성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불가능한 데는 3가지 원인이 있는데, 하나는 ‘하늘(天)’은 ‘이(理)’가 된다고 인식한다, 하나는 ‘어짐(仁)’은 ‘만물을 살리는 이치’가 된다고 인식한다’, 세 번 째로는 ‘불변함(庸; 떳떳하여 변하지 않는 중용)’은 ‘평상(平常=보통 때)’이 된다고 인식한다는 것 때문이다. 만약 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조심해서[愼獨] 하늘을 섬기고(事天), 힘껏 자신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여 행동함으로써[强恕] 어짐을 구하고(求仁), 또한 변하지 않고 오래[恒久] 멈추지 않는다면(不息), 이것이 성인이다(今人欲成聖而不能者 ..

다산 정약용과 서학 3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열매 맺는 회개(回心)- 다산 정약용은, ‘현실에서 올바름을 구한다’, ‘사실을 토대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여 대성한 실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광암 이벽의 영향으로, 둘째 형 손암 정약전과 함께 서학에 심취했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약전 역시 다산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자산어보(玆山漁譜)』를 쓴 실학자였습니다.) 그런데, 다산이 당시에 받아들였던 ‘실사구시’는,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실사구시’와 서학과의 연결 고리는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여유당전서』 시문집을 읽다가, ‘먼저 가신 둘째 형(정약전) 묘지명’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공은 섬으로 온 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