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실학과 서학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 -'진실 너머 진실'에 도달하기

써니2022 2023. 4. 1. 13:14

<다산의 '중수 만일암 기(重修 挽日菴 記)'에 나타나는 사실, 진실, 그리고 진실 너머 진실’>

 

*드러나 있는 객관적 사실’ -현존하는 공간*

열흘 만에 버리는 것은 누에의 고치이고, 여섯 달 만에 버리는 것은 제비의 둥지이며, 일 년 만에 버리는 것은 까치의 집이다.

그런데 한창 그들이 둥지를 짜고 엮을 적에,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 내고, 제비는 침을 토해 진흙을 개며, 까치는 바지런히 풀과 볏짚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꽁지가 빠져도 피곤한 줄 모른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지혜'를 천박하다 여기며 그들의 ''을 애달프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다.

 

*드러나 있는 사실에 숨어 내재하는 진실’ -존속(존재)하는 시간*

그러나 사람이 온갖 공력을 들여 지은 붉은 정자와 푸른 누각도 잠깐 사이에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 우리네 사람의 집 짓는 행위도, 따지고 보면 저 미물들이 하는 짓과 다를 바 없다. 설령 우리가 백 년을 다 살아 그 집을 버리게 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요란을 떨 것이 못되는데, 하물며 수명의 길고 짧음이 정해져 있지 않음에랴.

 

*사람의 선함(, 慈悲, 回心)으로 열매 맺는(實事求是) ‘진실 너머 진실’ -존속(존재)하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靈明(spirit)*

우리가 처 자식을 잘 살게 하고 후손에게 전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할 것이 없는데, 하물며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고 물들인 장삼을 입은 중의 처지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중이면서도 집을 고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승려 두운(斗雲)이 그 집을 새롭게 꾸미고 크게 넓혀 준공을 하자, 다산(茶山)에 있는 초당으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이 지방에 있는 절만 해도 바둑판에 바둑알 벌려 놓은 것과 같아. 절의 종소리와 북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니, 가는 곳마다 내 집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이제 나도 머리카락이 다 빠져 늙은이가 되었는데, 내가 비록 어리석으나 어찌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다만 잘 보수하여 뒷사람들에게 남겨 주려는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선하다 여겨 글을 짓고서, 그 집 이름을 물어보니, 두륜산의 '해를 잡아당기는 집(만일암 挽日菴)'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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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가지고서, 다산 정약용의 사고 방식을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현존하는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분석하고 나면, 존속(존재)하는 시간 안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아낼 수 있고,

2) 시간 안에 내재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 나서, 존속(존재)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맑고 밝은 영(靈明, spirit)으로 살펴 보면, 선한 마음(實心)을 써서 열매 맺는데 다다른다는 진실 너머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실에서 진실을 거쳐 '진실 너머 진실'까지 찾아 가는,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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