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추기경 되신 이후, 김수환 추기경님의 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써니2022 2007. 7. 17. 16:59

<주교회의 게시판에 '조형진'님이 올려주신 글 중의 일부분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지난 70, 80년대에 독재정권과의 투쟁에 압장서서 싸우신 분입니다. 그 근거로서 제가 작년에 작성한 글을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다소 길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1. 민청학련 사건


 - 1974년 4월 유신정권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불법 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확증을 포착했다"고 발표하고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池學淳, 1921~93) 주교를 포함한 180명을 관련자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자 김 추기경은 지 주교를 면회한 뒤 유신정권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며 주교회의를 소집했다. 전국에서 신부 수백 명이 상경해 구국기도회를 개최했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김재규(金載圭)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 찾아와 김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의 면담을 제안해 만남이 이뤄졌다. 김 추기경은 박 대통령과 정교(政敎) 분리, 노사 갈등 등의 문제를 놓고 대립하다가 지 주교의 석방을 얻어 냈다. 김 추기경은 또 박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젊은이들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들을 죽이면 안 됩니다. 국민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칠 것입니다."


며칠 후 감형 조치가 내려졌다.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유인태(柳寅泰, 열린우리당 의원), 이철(李哲, 한국철도공사 사장), 이강철(李康哲,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 씨 등 현 여권 핵심 인사들, 그리고 김지하 시인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해찬 총리는 당시 유신체제 비방 유인물을 살포한 혐의 등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11개월을 복역했다.


2. 1976년 3.1


- 서슬 퍼런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이듬해인 1976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3.1운동 기념미사와 천주교 개신교 합동기도회에서 유신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구국선언문'이 발표됐다. (당시 서울대교구 교구장은 김수환 추기경님이고 명동성당은 주교좌 성당이였다.)


이 사건으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문익환(文益煥) 목사 등과 문정현(文正鉉) 함세웅(咸世雄) 신부 등이 구속됐다. 김 추기경은 이 사건과 관련해 3.15 시국기도회를 열고 구속자들의 양심적 행위를 높이 평가했으며 이들이 수감된 교도소를 찾아 용기를 북돋웠다


3. 1980년 광주사태(5.18민주화운동)

 

- 12.12로 이른바 '서울의 봄'이 무너지고, 광주를 포위한 신군부 계엄군이 시민군 진압작전을 펼 당시에도 이미, 광주 현장에 계셨던 윤공희 대주교님과의 연락망을 뚫어서 '광주의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라는 편지를 주고 받으셨고, 윤보선, 함석헌, 천관우님 등과 함께 광주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성명을 말표하셨다.

 

- 5월 26일에는 광주 현장을 탈출해 오신 김성룡 신부님들으로부터 곧바로 광주 상황일지를 보고받으시는 등,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이후 국내외에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셨다.

 

- 7월 22일에는 '광주 시민의 아픔에 동참하며'라는 제목으로 시국담화를 발표하기도 하셨고, 이후 광주항쟁 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분들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리셨다(사형선고를 받은 3명 경우를 보면, 감형-석방이라는 성과들이 있었다 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보완했습니다>

 

4. 박종철 사건


- 1987년 박종철 사건이 발생했을때, 명동성당에서는 김추기경님의 집전으로 박종철 추모 미사가 열렸고 강론에서 추기경님은 5공화국을 아벨을 죽인 카인으로 비유했다.


5. 1987년 6.10 항쟁


- 우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6.10 항쟁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구심점이자 성역이었다. 명동성당에 대한 경찰 투입이 임박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김 추기경님은 정부 당국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이 밖에도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1978년)" "오원춘 사건(1979년)" 등 김추기경께서 인권과 민주화의 가치를 옹호하며 약자의 편에 선 사례들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김추기경님은 지난해 펴낸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나는 1970, 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고 말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보수권력을 비판했던 분이라도, 진보권력을 비판하면 수구반동으로 본다.

 적어도 '진보'를 외치시는 분들은... 그런 류의 행위를 하시면 곤란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오카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