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붙임-정치현실

오늘날 필요한 시대정신은? -하여가와 단심가

써니2022 2008. 11. 23. 23:39

 1.
  태종 이방원은 새 왕조 개창에 저항한 정몽주 등 고려 충신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리”하는 하여가(何如歌)로 정몽주의 마음을 떠 보았고, 그래서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라는 정몽주의 유명한 (일편)단심가(丹心歌)가 나왔습니다.
  태종은 자신의 군주 즉위에 방해되는 인물은, 국가 기틀을 짠 개국공신이든(정도전), 자기 형제든(방간, 방석, 방번)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군주로 즉위한 후에는, 군주의 위세를 엎고 떨쳐나서는 부인의 영특한 남자형제 넷 모두를 ‘불충(不忠)’이라는 죄목으로 제거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냉혹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이지만 당시 조선 백성들은 태종을 ‘친부모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가지고 놀았다든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는[顚倒一世] 평가를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을 가지고 놀기만 한 것일까요?

 

 2.
  태종은 태조의 아들들 중에서 유일하게 학문에 몰두하여(성리학), 젊은 나이에 과거 급제를 한 인물입니다. 그 이유는 “고려 말 정치가 혼란스러워 백성의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政散民離] 개연히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군주가 되자마자, 자신이 죽인 정몽주와, 초야에 묻혀버린 길재를 (고려의) 충신으로 현양하였고, 섬에 유배된 고려 왕족들을 육지로 나와 살게 했습니다. 정도전 역시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자기가 묶은 업보를 자기 당대에 풀어버린, 보기 드문 통치자였던 입니다.


 3.
  또한 임금 태종은 “재앙을 당하면 반드시 자신을 책망하고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 함을 신조로 삼았습니다. 백성들이 다치고 상하는 재앙이 일어나서 올곧은 언관들이 들고일어났을 때도, 대신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통치권자인 자신에게 언제나 허물을 돌렸다. 그래서 대신과 언관 모두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백성의 농사일을 걱정하여, “가뭄이 지금 심하니 죽은 뒤에도 앎이 있다면 반드시 이 날은 비가 오도록 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뒤에 바로 비가 오자 ‘태종의 비(太宗雨)’라는 말이 퍼져나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허물이 있는 가운데서 허물없기를 구하는’ 스타일의 인간[=程子]이자,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이 돌아가는 것을 꿰뚫어 알고” 처신한 통치자였던 것이지요.

 

  4.
  이렇게 보면, 정몽주와 태종이 주고받았다는 단심가(丹心歌)와 하여가(何如歌), 우리가 잘 아는 시조의 해석도, 냉혹한 지배권력의 선택이란 측면보다, 백성의 마음이 돌아가는 곳을 생각하는 통치자로서의 선택이란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보통 우리는 정몽주의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하는 단심가를 뜻 높은 인물의 기상을 잘 드러냈다고 봅니다. 반면에 태종의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리” 하는 하여가를 뜻 높은 인물의 기상을 꺾으려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여가 역시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기억해 오고 있습니다.
  임금이 읊었다는 사실 때문일까요? 뜻 높은 인물의 대명사인 정몽주를 기념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시절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들의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일까요?

 

 5.
  생각해 보면... 드렁칡이란, 온 세상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왕성하게 살아가는 넝쿨식물로서,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흉년에는 백성을 구제하는 구황식물도 되지요.
  곧 칡넝쿨이란 땅에 굳게 뿌리를 내린 백성들,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태조 이성계 역시 임금이 되기 전에 "칡넝쿨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에 올라가니"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태종의 이 시조는 높은 뜻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삶(생명력)도 그만큼 ‘시대 정신’의 큰 흐름으로서 중요함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6.
  사실 유교(성리학) 국가는 백성에게 예의염치를 알게 하여 미풍양속을 만들어 가는 길(道德-敎化)을 갑니다. 곧 인간적인 ’문화’생활을 하게 하는 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 상징이 바로 ‘님 향한 일편단심’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죽인 정몽주이지만, 유교국가인 조선의 미래를 위해서, 태종 자신이 그를 현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 하나만은 아닙니다. 백성들을 배불리 먹게 하여 생명이 오래 번성하도록 하는 것(足食-生民) 역시 유교 국가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상징이 바로 ‘만수산 드렁칡’입니다.

  백성들(생명)을 오래 번성하게 하는 길과 예의염치를 알게 하는 길, 두 길 중에서 먼저 가야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이는 공자-주자 말씀에 의하면, 백성에게는 배불리 먹은 연후에 예의염치라고... 집권층들에게는 예의염치(=명분)로써 가문을 세우는 일이겠지만, 백성들에게는 배불리 먹어 오래 번성하게 하는 일(=생명력)일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오늘날처럼, 다양하고 새로운 삶의 욕구를 실현하려는 평범한 민초들의 공공영역이 확장되면서, 이 공공영역과 그 대표자들을 기반으로 해서 민주주의가 구현되어 가는 시대에는, 어떤 길이 먼저 가야 하는 길, 곧 ‘시대정신’일까요? 그 ‘시대정신’은 조선시대에도, 권력자나 집권층의 명분이나 지혜가 선택한다기보다, 결국은 국가의 토대인 백성들의 필요성이 선택한 셈입니다.
  시대에 따라서는, 아마도 고결한 단심가보다, 함께 가는 하여가가, 보다 의미 있게 기억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8.
  백성의 생존권을 넓혀 나가려면, 누구를 흔들고 누구를 흔들지 않아야 할까요?
  ‘큰 줄기[大體]를 알고 지켜내는 대신과 말하는 책임을 올곧게 수행하는 언관은 흔들지 않지만, 떨쳐나서는 영특한 친, 인척은 흔든다’. 이것이, 태종 임금이래 문민시대를 연 조선 사람들이 역사 경험으로 말하는 지혜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선택하는 지혜는? 이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시대를 외면하는 특정 명분 등등으로) 마구 떨쳐나서기만 하는 정치꾼들의 몫이 아닙니다. 바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보통 국민들의 몫입니다. 우리 보통 국민들은, 지금 진정 필요한 길이, 공공영역과 그 대표자들을 통하여, ‘시대정신’으로 제대로 모여지도록 하는 희망과 노력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