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붙임-해방과 6.25

통일전쟁도 동족상쟁의 內戰이므로 가능한한 피해야 했다

써니2022 2005. 7. 28. 16:22

전쟁광인 맥아더가 민족통일전쟁인 6.25전쟁에 미군 개입을 건의하지만 않았더라면.... 큰 살상도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요?

 

1) '민족통일전쟁은 세계적 전쟁보다 민족에게 비극적이 아니다'라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등등 멀리 가지 않더라도, 중국의 국공내전 과정에서 무고하게 죽은 국민들이나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내전과정에서 일어난 킬링필드,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궤 이후 일어난 내전 등등 수많은 내전 사례들을 볼 때, 내전으로 당하는 전쟁-질병-기아 상태 같은 비극적 상황은 결코 6.25의 비극에 못지 않습니다. (아니, 정치적 내전 스타일로 통치했다는,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연방을 생각해 봐도...)

  같은 민족 간의 내전이라면, 외국군의 개입보다는 살륙과 비참함이 덜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실제 역사 현실에서는 대체로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적 가정이나 상상은 자유지만, 현실은 가정이나 상상 수준을 넘어서서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2) 특히 강정구 교수님이 역사적 예로 든 후삼국 통일전쟁이야말로, 수없이 많은 전투-질병-기아 상태들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견훤의 경우 포석정 기습-신라왕을 자결시키고  비빈들을 능욕한-이라든지, 궁예의 경우 진골 출신들은 무조건 끓는 가마솥에 넣어 죽였다든지... (진골 정도는 그래도 작은 숫자, 또는 진골이니 당연할지도?) 

  후심국 통일전쟁은 우리 역사상 엄청난 살상이 저질러졌지만, 그래도 우리 역사상 외세 개입 전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내전이기는 했습니다.

 

3) 무엇보다도, 6.25전쟁 발발 당시, 남북은 내전은 가능한 한 피해야 했습니다. (내전은, 어떤 경우도 승리자에겐 통일전쟁이지만...)

  서로 죽인 목숨값으로 인한 후유증은 엄청난 거라는 건 꼭 6.25체험이 아니라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야말로, 외세 개입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는 사실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6.25 당시 우리는 어떤 무기로 싸웠나요? 미국제, 소련제 무기입니다(중국제, 일본제도 아마 조금...).

  왜 그랬나요? 서양의 제국주의적 침략-->일본의 파시즘화와 식민지 강압 통치-->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미소에 의한 38선 분단-->남북한 단독정부 수립-->그리고 6.25전쟁이라는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하는 가정이 민족을,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학자들 입에서 나오나요? '당시에 내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바로 외세 개입'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민족의 운명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시 김구, 김규식, 조소앙들을 포함하는 민족 지도자들은, 내전 발발의 위험성 때문에도,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국가 수립에 진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역사에서 이런 저런 가정은 전혀 무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지금 그놈의 일본군이 없었더라면 식민지 비극은 없었을텐데 하고 생각해 볼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가슴이 시원해진다든가, 현실이 바뀐다든가, 문제가 해결된다든가 하나요? 그 사실을 직시해야만, 비로소 일본과 우리와의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요... 6.25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4) 맥아더는 (스탈린 지도 하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국가에 의한 6.25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미군의 개입을 건의했을 겁니다. 물론 결정자는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었겠죠.  미국의 국가 이익과, 미국에 의한 세계 평화(로마제국에 의한 세계평화) 같은 장래 미국이 놓치지 말아야 할 역할 등을 고려해서 내렸겠지요.

 

  (미국의 이 결정을 가장 한탄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낙동강까지 대책없이 밀려가는 상태에서의 대한민국 군, 그리고 남침-내란 발발을 보는 민족지도자들이었을까요? 아니죠, 스탈린과 김일성이었겠죠... 그래서 강정구 교수님의 판단에 정말 강한 의구심이 가는 겁니다.)

 

5) 강정구 교수님의 견해는,결국 소련(제 무기)에 의한 북한군의 내전 승리야말로 (아마도 가장 싼 값의 대가를 치르는) 민족 통일국가 건설이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아마 베트남전 결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을지도...).

 그런 가정 자체도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오늘날의 정치적 희망사항이지만, 내전 발발 자체가 엄청난 민족적 비극이고, 이는 당시 (냉전 시작)상황으로는 곧바로 (무기, 연료 등 전쟁물자 때문에도) 외세 개입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은,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 그래서 미리 도출된 결론에 맞추는 감자캐기식 논문을 쓰고 나면, 이를 진실 그 자체로 믿게된다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살면서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오만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보수적 상식주의나 진보적 추수주의에 쉽게 흔들리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삶의 진정성에서 나온 진실은 결코 버리지 않고들 사시지요...)

 

  (<강정구 교수님은 '해방'을 다시 생각해야>라는 이전에 쓴 글이, '의견붙임' 항목에 있습니다. 이 글은 그중에서 맥아더 아니면 6.25전쟁이 한달 전후에 큰 살륙 없이 끝났으리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부분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