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십자가의 성요한 -완덕의 가르멜산에 붙인 시 '모든 것'

써니2022 2007. 7. 17. 16:34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 1542-1591)  -축일 12월 14일

 

 

 

                                  <모든 것>

 

                         1.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맛보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 

 

                         2.

                       맛보지 못한 것에 다다르려면,
                       맛없는 거기를 거쳐서 가라.

                       모르는 것에 다다르려면,
                       모르는 거기를 거쳐서 가라.

                       너 있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너 있지 않는 데를 거쳐서 가라.

                       아직 다다르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도중 아무 것에도 발을 멈추지 말라.

 

                         3.

                       어떤 것에 네 마음을 머물러 두면

                       온전하심에 너 자신을 맡기지 못한다.

 

                       온전하심에 온전히 다다르기 위해

                       모든 것에 대해 너 자신을 온전히 끊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었을 때는

                       아무 것도 원함 없이 이를 지녀야 한다.

 

                          4.

                       이 헐벗음 안에서

                       영혼은 쉼을 발견하나니

 

                       이는 아무 것도 원치 않기에

                       위로 그 무엇도 그를 괴롭히지 못하고

 

                       아래로 그 무엇도 그를 누를 수 없으니

                       이는 그가 겸손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영적 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감추어진 신비의 지식-

 

  거룩한 학자들이 발견하고

  이 생활 상태에 다다른 영혼들이 알게 된

  신비와 경이가 많지만

  아직도 그들이 말할 것과 이해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들어가야 할 깊은 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무리 깊이 파 들어가도 끝에 도달할 수 없는

  풍부한 광산과 같습니다.

  그 안에는 보화를 매장하고 있는 광맥들이 허다하여

  매번 여기저기에서 새 보화와 새 광맥을 찾아냅니다.

  이 때문에 성 바울로는 그리스도에 대해

  "그 속에는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먼저

  내, 외적 고통이라는 작은 문을 통해서

  영적 지혜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대로 이 보화 속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기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현세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알게 될 수 있는 것마저

 

  먼저 아는 고통을 당하거나

  하느님께로부터 수많은 영적이고 감각적인 은혜를 받거나

  또는 많은 영적 수련을 미리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이 모든 은혜들은

  그리스도의 지혜에 다다르기 위한 선결 조건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지혜보다 더 낮은 은혜들입니다.

 

  영혼이 고통에다 위로와 열망을 두지 않거나

  또는 여러 겹으로 된 고통의 숲 속을 거치지 않고서는,

  여러 겹으로 된 하느님 보화의 울창함과 지혜에 결코 이르지 못함을

  

  우리가 단 한 번 결정적으로 깨달았으면 합니다.

 

   또한 신적 지혜를 참으로 갈망하는 영혼은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십자가의 숲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원해야 함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이 때문에 성 바울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환난에서 실망하지 말고 힘을 돋구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하느님 보화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는 문은

   십자가라는 문입니다.

   그 문은 좁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들어가고 싶어하는 이들은 적지만

   그것을 통해서 다다를 수 있는 행복을 바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십자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간략한 생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십자가에서 도망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삶과 저서를 통해 말해준다. “‘만약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마태오 16, 24)’는 말씀은 곧 그의 생애의 표현”이라고 할 만큼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의 생활에서 「십자가」의 실현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보였다.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은 1542년 6월 24일 에스파냐의 아빌라(Avila) 근교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직조공이었던 곤살로 데 예페스(Gonzalo de Yepes)와 카탈리나(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유복자)로 태어났다. 본래 조상은 명문 귀족이었으나 가세가 몰락, 요한이 태어날 당시에는 매우 가난했다. 형 루이스(Luis) 역시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에 정착해 살며 교육을 받았고, 17세 때에는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메디나 병원장을 위해 일했다. 이때 병원 전속 사제가 되려는 생각으로 예수회가 경영하는 신학교로 통학했던 그는 1563년 메디나 델 캄포의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이듬해에 성 마티아의 요한(Juan de Santo Matia)이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하였다. 1564년부터 4년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6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한은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빌라(Avila)의 성녀 데레사(Teresia, 10월 15일)를 만났다. 그 당시 가르멜회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해 더 고적하고 깊은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성 요한이 피력하자, 성녀 데레사는 그를 설득하여 가르멜회에 남아 함께 개혁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1568년 11월 28일에 그는 두루엘로(Duruelo)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도움으로 개혁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성 요한은 가르멜회의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으며, 이때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으로 바꾸었다. 그는 열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인근 마을들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 뒤 두루엘로에 최초의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십자가의 성 요한은 23년간의 개혁 가르멜회 생활을 통해 가르멜회 회원들에게 영성의 뿌리라는 '가르멜 산의 예언자 엘리야' 보다 훨씬 더 많은 영성적 영향을 드러냈다. 두루엘로에서의 새 생활은 엄격한 금욕, 극기와 고행의 생활 등 가르멜 수도회 본래의 은수적 관상적 수도 생활 실천으로 요한을 이끌었고, 한편 맨발로 마을내 부락을 돌아다니며 사도직을 수행했다.

 

  그는 개혁 가르멜회의 보급을 위하여 진력을 다하던 중, 1577년 10월 2일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가르멜회 수도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톨레도(Toledo) 수도원 다락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578년 8월까지 9개월간 '어두운 밤'을 체험하였다. 동료들에게 배척당하고 「순명하지 않는 자」로 비난받는 고통스런 경험 속에서 그는 여러 편의 시를 탄생시켰고 이후에는 그 시를 설명하고 해설하기 위한 저서들을 남길 수 있었다. 「로망스」 「내 그 샘을 잘 아노니」와 「영혼의 노래」 일부가 이때 쓰여진 것이다. 이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신비적, 영성적, 문학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9개월 만에 감옥에서 탈출한 그는 개혁 가르멜회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1579년 맨발의 가르멜회는 인정을 받았고 수도원도 세웠다. 그는 바에사에 개혁 가르멜회 대학을 세우고 학장이 되었으며, 1582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로스 마르티레스 수도원의 원장을, 1585년에는 안달루시아(Andalucia) 관구장을 역임하고 가르멜회 제1평의원, 세고비아 수도원 원장직도 맡는 등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590년 가르멜회의 분쟁이 재현되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요한은 1591년 6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그대로 에스파냐에 남게 된 그는 그 해 9월 말 우베다(Ubeda) 수도원으로 옮긴 후 병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 12월 13일 밤 자정이 지난 무렵에 사망하였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저서들은 가장 유명한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어둔 밤"들이 유명하다.

 

  그는 사랑의 부르심을 받은 인간의 소명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았다. 또 이 소명에 충실히 응답하는데 모든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해 영적인 가르침들을 펴고자 했다. 그는 저서들을 통해서 사랑이 인간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소명이라는 사실과 사랑이 인간 실존에 총체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 또 사랑이 인간의 실존을 하느님을 향한 점진적인 여정으로 변모시킨다는 것을 드러냈다. 특히 「어둔 밤」 등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올바르게 찾고 사랑하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학자들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삶과 저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너희가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십자가에서 도망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스파냐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애 부분은 굿뉴스에 주호식 신부님이 올리신 글들을 중심으로 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그리신 완덕의 산>

 

***흐르는 노래는 최민순 신부님의 '두메꽃'입니다. 최민순 신부님은 가르멜회의 지도신부님도 역임하셨습니다. '두메꽃' 역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