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정치와 역사

역사 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청산하기

써니2022 2006. 1. 4. 21:16

 

  -역사 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청산하기-

  5.16군사쿠테타 이후 계속된 사실상의 군부통치를 종식시킨 김영삼 '문민정부'는 '역사 바로세우기'를 이벤트로 내세웠지만,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인으로 키워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과거사 청산'을 이벤트로 내세웠지요.

  그런데, '역사 바로세우기'나 '과거사 청산하기'는, 용어 자체로만 생각해 보면, 각각 긍정적 화법의 표어냐 부정적 화법의 표어냐 하는 차이일 뿐, 사실상 동전의 앞뒷면이지요.  이제까지 잘못된 길을 택해서 비뚤어져 버린 역사의 길을 드러내서 바로 잡겠다는 뜻이라고 해석됩니다.

  이런 표방은 오늘날 우리 사회 뿐아니라 전근대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용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정치적 권력을 변화시킨 큰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대체로 과거사 청산하기나 역사 바로세우기 슬로건들이 나타나지요.  하지만, 용어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실제 내용들은 사실상 엄청난 차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근대사회와 근대사회 모두 유사한 용어를 계속 사용해도 좋은 경우도 있고,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많은 개념의 변화가 일어난 경우도 있고...

 

  -전근대사회의 「폐가입진(廢假立眞)」 「반정(反正)」 「혁명(革命)」

  조선왕조 시대에서  <과거사 청산 - 역사 바로 세우기>에 근접한 개념은 「폐가입진(廢假立眞)」 「반정(反正)」 「혁명(革命)」 들인데,. 대체로 중국 역사에서 나온 용어를 당시 우리의 현실에 원용하였습니다.

  (한말 외세의 침략을 맞아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쓴 「유신(維新)」의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는 전환기를 맞아서 시대에 뒤떨어진 옛 것을 전면 개혁하여 새롭게 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지요. 곧 「역사 바로 세우기나 과거사 청산하기」라기 보다 「새롭게 출발하기」 내지 「제 2의 건국」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봅니다.)

 

  -과거사 청산하기에 가까운 「폐가입진(廢假立眞)」과 「반정(反正)」-

  첫째로, 「폐가입진(廢假立眞)」은 가짜를 폐지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고려말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세력이 자신을 적대시한 우왕(禑王)․창왕(昌王) 부자를 폐위시키려고 만든 표방이죠. 당시 통치자가 진정한 군주인 왕씨의 후손이 아닌 신돈의 후손이므로 정통성에 문제가 있어서 당연히 폐위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곧, 당시 권력의 상징인 군주의 혈통을 신씨에서 왕씨로 바로 잡는다는 개념이지요. 이성계의 이런 정치적 표방은 정몽주 같은 인물의 동의까지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는 올바른 계승자를 세움으로써 「권력자의 정통성을 바로 잡는다」는 수준의 주장이어서, 「권력자의 정통성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12사태(군사반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들이, 당시 유신체제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대세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잇기 위해 거사했다고 내세운 표방도 이러한 정치적 권력자의 정통성을 바로 잡겠다는 수준의 개념이라고 해석할 수 있죠.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 수립」이라는 표방도 결국은 이런 「폐가입진」식의 개념에 해당합니다.

 

  둘째로 「반정(反正)」은 잘못된 길로 가서 어지러워진 사회를 올바른 길로 가도록 바로 잡는다는 뜻입니다. 연산군을 폐위시킨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반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중종반정은 정치적 폭정과 경제적 가렴주구로서 신하와 백성들을 다수 죽이고 못살게 만든 군주의 통치 행위를 바로 잡겠다는 표방인데, 조광조 같은 원칙론을 지키는 인물들의 협조를 이끌어냈습니다.

  인조반정은 명나라가 왜란 때 우리를 구해준 의리를 저버린 데다가, 이어서 어머니를 폐하고 형제들까지 죽이는 등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무너뜨린 군주의 통치 행위를 바로 잡겠다는 표방이었는데, 당시 「산림(山林)」이라고 불린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역사에서는, 역시 적절하게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여 죽이고 한국인들을 못살게 구는 등 일본 통치에 적극 협력하였으면서도, 해방 이후 계속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친일파들을 처단하려는 운동이었던 「반민특위(反民特委)」 활동의 목표가 「반정」에 상당히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 「민족과 백성을 배반한 권력자들의 처단」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어느 정도 성공한 경우로는,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자유당 정권의 독재를 처단했던 4․19를 「혁명」보다 「의거(義擧)」라고 규정했을 때의 「의거」가 곧 반정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결국 「반정」 식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이전 권력자의 「잘못된 통치 행위를 바로 잡는다」는 수준의 주장이라고 보입니다.

  현재 노무현대통령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 운동은  사실은 이에 해당한다고 판단됩니다. 

 

-근대사회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바로 '명예혁명'과 '혁명'-

  셋째로 「혁명」에는 「승평혁명(承平革命)」과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있습니다.

  「승평혁명」이란 평화적인 권력자 교체였지만, 그 변화는 새로운 건국과 같은 사회 제도의 변화가 뒤따랐다는 뜻이지요. 오늘날로 보면, 근대사회를 출발시킨 영국의 「명예혁명」과 같습니다.

  역성혁명은 혁명의 일반적인 의미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뜻과 백성의 뜻을 따르는 새로운 성씨의 권력자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려고 뛰어들어서, 대체로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나라를 다시 세움으로써, 이전의 사회제도 전체를 하늘의 뜻과 백성의 뜻에 따라서 바꾸는데 성공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하지요. 정치가, 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이 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중국혁명 같은 제1-2-3혁명들이 그렇지요.

  조선왕조의 건국에는 바로 「승평혁명」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왕조는 3국 항쟁 시기의 지방정권적 국호였던 「고려」를 국토 전지역을 포괄하면서도 가장 오랜 역사적 유래를 가진 국호인 「조선」으로 바꾸는 일, 일반 백성을 위한 토지제도 개혁, 외침을 막기 위한 부국강병 추진들을 「혁명」임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업으로 추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의 한계성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는 않지만...).

 

-현대사회에서 바람직한 과거사청산, 역사 바로세우기는 '명예혁명'-

  오늘날에는 이런 전근대 사회의 「혁명」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정치 제도와 사회 구조에 대한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혁을 추진함으로써 권력(주권)을 국민(민중, 대중)에게 돌려주고, 평등한 법치(法治)와 분배의 정의를 기초로 하여 사회 구조를 평등하게 만들고, 재산-명예-생명-행복추구 및 양심의 자유들을 보장함으로써 공동선(共同善)의 달성을 목표로 한다는 수준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준의 「역사 바로 세우기-과거사 청산하기」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4․19혁명 두 역사적 사건이, 부족하거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와 같은 역사적 사업을 시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과거사 청산하기」의 가장 높은 수준은 바로 이 「혁명」적 변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명예혁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날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명예혁명」(또는 「제2의 건국」운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수준의 역사적 사업이 우리 역사에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역사에서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사실로서 멀리는 동학농민운동 실패에서 가까이는 친일파 청산 실패, 4․19혁명 좌절, 유신 독재 청산 실패, 광주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과 정경 유착으로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짓밟은 군사정권 잔재의 청산 작업 지연들을 열거할 수 있다는 점으로 잘 뒷받침됩니다. 결국 「혁명」 식의 「역사 바로세우기-과거사 청산하기」는 권력자의 정통성 확립, 잘못된 통치 행위 바로 잡기 뿐 아니라, 「백성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전면적인 사회 개혁」을 달성하겠다는 수준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권력의 정통성 수립이라든지, 명분 뿐인 잘못된 통치행위 바로잡기라는 질 낮은 목표에 집착하지 하지 않는 것-

  이상과 같은 개념 정리를 바탕으로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 방향을 (과감하게) 평가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합니다.

  정치적 목적을 가장 앞세운 나머지 「권력자의 정통성 확립」 수준에서 만족한다면, 일시적․전술적인 성공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이나 격렬한 저항에 부닥쳐서, 개혁의 앞날은 아주 험난할 것이라는 겁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이전의 「잘못된 통치행위를 진정으로 바로 잡는」 수준까지 나아간다면, 양심적 정치가들의 단합을 통한 정치적 개혁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진정한 개념대로 「명예혁명」이라는 수준의 목표를 달성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원칙대로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진정한 평등과 공동선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역사 발전에 커다란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현재 진행중인 황우석 사태나 노무현 대통령 통치 스타일을 보니... 현대인 역시 분명 과학적 이성에 따라 움직인다기 보다는 원죄-악의 꽃-원초 본능-집단 광기-공중의 권세자 등으로 표현되는 힘에 따라 움직이는 역사 방향의 불확실성이 현실적인 힘이기도 하므로... 과거사 청산이 곧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님들이 많을수록 냉혹한 광기 스타일에 의해 움직이는 역사의 불행한 꺾임도 생각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청와대 무대뽀에, 황우석 왕구라에, 전교조 깡다구에다 전농 남의나라 홍콩원정시위에 재시위 협박... 국민정당은 사기-정쟁 도구에, 안기부X파일-강정구에 검찰 난리, 총기난사에 군대 난리, 사학법개정에 종교계-사립학교 난리... 과거사 청산 정권이라는데... 뭔 나라 꼴이 냉혹한 광기???

 

---우리나라는 역사 용어 자체가 보편적인 개념과 아주 다르게 불투명하게 쓰여지고 있는 대표적인 학문후진국형 나라죠. 예컨대 진보-보수-수구 등등. 보다 정확하게 말해 보면,  진보의 반대는 퇴보, 보수의 반대는 개혁(혁신), 수구의 반대는 혁명이죠. 하지만 실은 혁명만을 꿈꾸는 분들이 진보니 개혁이니로 치장하거나 스스로 속고들 계시면서 반대파에게는 예외없이 수구라는 딱지를 붙이고 게시죠. 그러니 토론이 될리가 없죠. 특히 종교인들까지도 자기 잣대로 구분하는데...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세상에는 진보니 보수니가 있을 수 없죠. 좋은 의미의 진보와 보수는 인간 세상에만 시대적 소명에 따라 있을 수 있는 개념이죠.

 

---구조니 모순이니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이젠 진보님들도 역사상 본받을 사람들을 가르쳐야죠. 이승만-박정희 대신 전봉준-김구(여운형,박헌영) 또는 김형직-김일성 내세운다고 사람들 이해하나요? 진정한 진보라면, 생산관계와 연계해 가르치실 사람-설명을 빨리 찾으시오. 아무리 보수를 욕해도, 보수의 시각은 그렇게 되어 있죠..

 

 

***과거사 청산 문제***

 

--한영우 교수는 “피해자를 양산하는 개혁은 실패한다”면서 “한국의 보수도 현재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인데, 이 점을 간과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지 않겠느냐”고 했다.

 

--제가 보기엔, 과거사 청산은 분명, 1차로는, (학문적 판단, 공동체적 기억에 바탕한) 진실의 문제죠.
하지만, 현실 역사에서 보면, 청산의 기준을 정할 때는 반드시 포용의 기준도 함께 정해야 합니다. (포용 기준 없이 모호하거나, 청산 기준만 부각시킨다면, 곧 정치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 수단이죠. 청산 만이 '정의'이고 '선'이란 환상은 버려야 할 겁니다.)
동시에, 청산 기준과 포용 기준이란, 기준을 정할 당시
1) (국가)공동체가 지향하는 역사 건설 방향에 적합하고
2) 그 시대가 담당해야 하는 (시급한 필요성에 입각한) 정당한 생산 노력 지원에 적합하고
3) 이로써 국민적 내지 민중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기준을 의미할 겁니다.
곧 당시 문화(국민생활-민중생활) 수준이 감당할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고난도의 정치 행위이기도 하다는 뜻이죠.

더 오래 보존-재생산되는 역사적 기억 수준까지 나간다면, 문화원형질에 해당하는 '정화된 기억'까지를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